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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포스트휴먼1 / 세미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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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공간 사일삼에서 열린 기술철학세미나_포스트휴먼1 은 6편의 저널 글과 참가하신 분들이 작성하고 보내준 에세이, 관련 자료들을 중심에 놓고 3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정보기술에 기반한 유전, 나노, 로봇공학, 인공지능 (통칭 NBIC혁명) 기술이 만들고 있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그것을 둘러싼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지형들을 살펴본 시간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포스트휴먼이라는 주체를 떠올릴 때 그 기술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나 심신 강화의 질문으로 소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으며, 그 보다는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요청할 것인지 요구하는 질문 자체에 포스트휴머니즘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의견에 공감을 했습니다.

저널 글들은 포스트휴먼 담론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글부터 ‘인간’의 정의 자체가 시대적으로 변해왔음을 보여주는 글, 인간 신체/정신의 증강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견해를 담은 글,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담론, 혹은 그 둘의 대립적 생각을 넘어 다른 기술-인간 관계를 촉구하는 글까지 여러 관점을 담은 글이며 발표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물론 해석적 차이가 있으니 꼭 원문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포스트휴먼을 향한 인간의 미래?

 

(이종관 / Future Horison 2016)

(포스트휴먼 담론에 대해 개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

 

포스트 휴먼은 인간의 생물학적 몸은 도태되고, 첨단 기술(융합기술)로 증강된 인간 이후의 존재자를 말한다. 기계, 기술과 융합된 인간 – 이 시점에 이르면 인간의 진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기술의 조정을 따르게 된다.이것은 인간의 존재양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포스트휴먼의 견인차인 트랜스휴머니즘은 2002년 미국 과학재단에서 나온 <인간 성능 증강을 위한 융합기술>이란 보고서가 이정표가 되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영생이라는 종교적 번안,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정치이념, 교육의 변혁, 국가 안보, 정부정책의 개입등이 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네오 휴머니즘은 첨단기술 발전 과정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존재의 의미를 회복시키려는 철학적 움직임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정신을 육체에서 분리 가능한 정보 패턴으로 간주하는 반면 네오 휴머니즘은 인간의 인지능력 – ‘앎’은 알고리듬화 할 수 없는 암묵적 차원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은 제한적 영역에서만 인간의 지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인지활동이 뉴런의 연결관계망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체적 몸이라는 물리적 기반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술을 통해 인간의 증강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과 달리 네오 휴머니즘은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본성을 몸, 예술적 몰입, 죽음에의 불안에서 찾는 흐름이 있다. 저자는 미래적 기술은 인간과 삶, 몸과 함께 협력이 가능하게 설계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이는 융합(converging)이 아닌 융화(harmonizing)의 미래를 의미한다고 표현한다.

 


 

휴머니즘의 경계를 넘어서 : 근대 인간학의 종언과 인간의 새로운 변형 

(최진석)

(인간에 대해 정의하는 인간학의 시대적 변형에 대해 다룬 글)

 

이 글은 포스트휴먼을 생각하기에 앞서, ‘인간’ 에 대한 인식 체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정말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적으로 시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인식 체계에 따라 만들어져 온 정의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 체계를 푸코의 정의에 따르면 ‘에피스테메’ 라고 한다.. 에피스테메는 사물을 다른 것들 사이에 배치하는 구조적 사고의 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포스트휴먼을 논할 때에도, 이 글에서는 인간 자체의 변화 보다는 인간을 정의하고 인식하는 사고의 틀, 즉 ‘에피스테메’ 의 변화에 중점을 둔다. 19세기 인간성이란 생명, 노동, 언어로 인해 정의되었는데, 21세기 지금 생명, 노동, 언어는 더 이상 인간 속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는 인간성을 보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정의해야 한다, 라는 것이 이 글의 적고 있는 부분이다.

 

특히 ‘인간’ 이 하나의 주체로써 인식된 것은 역시 겨우 19세기부터라는 점도 이 글에서는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다. 중세는 개인의 사적 공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종교적 교리와 봉건적 질서가 개인의 자유라는 인식에 앞서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트렸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즘조차도 근대에 만들어진 신화일 수 있다는 것을 이 글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이제 ‘인간성’ (휴머니즘) 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해야 하냐는 것이 이 글이 묻고 있는 것이다.

 

“생명, 노동, 언어는 더 이상 인간학적 특질이 될 수 없다. 생명, 노동, 언어로 짜여진 인식의 망이 찢어지고 끊어졌다 할지라도 삶은 계속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이런 진술을 실존주의적 희망의 원리로 쉽게 대치해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에피스테메를 구성해야 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물음은 인간의 유지와 보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제 인간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에 대한 것이다. 특정한 배치가 만들어낸 순환회로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배치의 실마리를 모색하며 더듬어 나가는 존재에 관해. 우리는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경계 : 휴머니즘에서 트랜스휴머니즘까지

(호세 코르데이로 / 싱귤레리티 대학 / 1회 세계인문학포럼 발표자료집)

(트랜스휴머니즘의 관점을 설명하는 글)

 

2003년 미국 국가과학재단은 「인간 능력 향상을 위한 융합기술: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정보기술과 인지과학」 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술적 목표와 비전을 인간 증강/향상에 두고 있는 이 보고서는 N: 나노 기술, B: 생명 공학, I: 정보기술, C: 인지과학을 다루고 있으며 기술적 발전은 NBIC가 통합하여 수렴하는 형태로 발전될 것이라 예측했다. 이러한 기술적 수렴, 기술적 진화에 힘입어 인간은 트랜스휴먼, 최종적으로는 포스트 휴먼이 되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술과 인간 지능의 통합이라는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라잡지 못하는 시점이 올 것. 공상과학 소설가인 베노 빈지는 이 때가 인간의 시대가 끝나게 될 것으로 얘기하기도 하였다.

 

또한 현재의 인간은 21세기에 100년이 아닌 2만년 정도의 속도에 가까운 진보를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여러 가능성 중 실리콘 기반의 생명체로 진화를 해나가면 안되는가? 이러한 포스트 휴먼의 단계가 되기 위해서는 실리콘 기반의(인공지능) 고도의 지능을 갖춘 지각 있는 생명체에 의해서가 가능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상 최초로 진화와 한계의 의식을 가진 종이며 인간은 종국적으로 이들 제한을 넘어 트랜스휴먼과 포스트휴먼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는 영장류에서 인간으로의 진화와 같은 더딘 과정과 반대일 것이며 미래의 생명체는 인간을 전혀 닮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은 탄소 기반 뿐 아니라 우주 여행과 같은 환경에 유리한 실리콘 및 기타 플랫폼에 의존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새로운 과학적 생명체는 세계적 두뇌, 행성간 두뇌, 더 큰 은하계간 두뇌로 연결될 것이다. 종국엔 생명과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답하는 윤리와 지혜를 지닌 인간이 포스트휴먼일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포스트휴먼 담론들

(이경란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트랜스휴머니스트들 부터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관점에 대해)

 

포스트휴먼이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본한 존재라면 트랜스휴먼은 포스트휴먼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먼 영의 [디자이너 혁명 : 포스트휴머니스트 선언문] 이나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자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인간의 신체적 조건을 한계라고 보고 스스로 리디자인 하겠다고 선언한다.

 

친애하는 자연에게

 

당신이 거저 준 생명이라는 놀라운 선물에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랫동안 많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디자인에 대해 몇 가지 개선안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현재 모델은 디자인상의 여러 결함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두뇌, 심장, 폐, …뼈 등 모든 부품에 치명적인 고장이 수시로 발생합니다….업그레이드 모델에는 자동·자체 수리 프로그램을 포함시켜주실 수 없으신지요? 기능을 위한 디자인의 모든 면을 전반적으로 개선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우리가 사용하는 모델이 마모되어 가고 있거든요.

 

당신의 진실한

트랜스휴머니트스 협회 (2006 부분 발췌)

 

 

막스모어(인체 냉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코어 생명연장재단 대표)와 같은 이를 중심으로 하는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이성과 과학의 힘을 과도하게 신뢰하며 과학기술의 혁신과 발전이 인간의 정치 문화 생물 심리, 수명, 자기 개선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개인-자유주의와 결합된 시장 중심 자본주의를 보인다.

 

반면 닉 보스트롬과 같이 유럽 기반의 학자들은 자유방임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좀더 성숙하고 학술적인 트랜스휴머니즘을 모색하는 세계 트랜스 휴머니스트 협회를 설립하며 지나친 기술낙관 주의에 거리를 두고 있다.

 

캐서린 해일스와 같은 이들은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를 같이 사용하나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포스트휴먼과는 다른 내용이다. 정보가 아무 변화 없이 서로 다른 물질적 기층을 오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문화(가상성의 발전이 진보로 간주되는)에 대해 그것은 불가피한 결론이 아님을 드러내려고 한다. 헤일스는 인간이 ‘무한한 힘과 탈신체화된 불멸’이라는 환상에 미혹되니 않고 인간이 지속적 생존을 위해 의지하는 물질 세계에 담겨 있음을 이해하는 포스트휴먼을 촉구했다.

 

또한 다나 해러웨이를 통해서는 현대기술이 가능하게 한 사이보그들이 사실 군사 프로젝트의 산물이며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과 깊게 협력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헤러웨이는 ‘지배의 정보과학’이라는 새로운 전 지구적 네트워크 사회에서 젠더, 계층, 인종의 문제가 더 가혹한 착취의 구조가 될 수 있음을 파악하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사이보그에 거주하며 (특히 페미니스트 과학자)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의 대립구도를 벗어나 포스트휴먼의 조건과 곤경을 감당할 수 있는 이론을 세울 것을강조하였다. 이는 환경적 타자, 기술적 장치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타자들과 상호접속하는 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탈-인간중심주의로 긍정의 대안을 구축하게 하는 정치학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 주체가 될 수 있는가?

(김재희)

(트랜스휴머니즘과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넘어 시몽동의 기술철학에서 포스트휴먼의 의미를 가늠하는 글)

 

 

휴머니즘이 인간 본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적이고 문화적 개선에 의존한다면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생물적 유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공학을 적용해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하는 가능성과 바람을 긍정한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관한 종교적 형이상학적 이해와 싸우며 합리성에 호소한다는 면에서 여전히 트랜스휴머니즘은 계몽적이 아닐까? 그 계몽성이 과연 포스트휴먼의 해답을 감당할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트랜스휴머니즘이 기술만능주의적 테크노크라시즘에서 동력을 받지 않는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에게서 개선시킬 것과 버릴 것의 분리와 선별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여기에는 강력한 인간 중심주의가 내재되어 있으며 비인간, 타자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에 비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캐서린 헤일즈는 신체화된 실재에 근거한 인간과 지능형 기계의 접합체로의 포스트휴먼을 제시한다. 즉 자율의지는 ‘분산된 인지’로, 신체는 ‘체현된 실재’로 하는 ‘인간 -지능형 기계’의 역동적 제휴’를 주장한다. 즉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의 체현과 체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포스트휴먼은 탈 신체화된 사이보그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환경 속에서 기존의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체현되고 체화된 주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헤일즈 식의 체현되고 분산된 인지로 과연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개인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런 방식은 결국 기계를 사용하여 자유를 확장하는 인간이라는 고전적 사이보그 이미지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여기서 시몽동을 보자. 시몽동은 자연의 공통된 실재성에 근거해 개체초월적 관계를 회복하며 기계들이 어떻게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소통과 공명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붇는다. 자본과 결합한 자유주의 휴머니즘이 인간을 파편화 시키고 기술의 도구화를 강화하고 있는 이런 때에! 더욱 필요한 관점이지 않을ᄁᆞ.

 

개체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적 실재로 이해하고 있으며 불일치하는 두 항이 동시에 참여하며 개체초월적인 도약을 함으로써 증폭 시키는 것. 따라서 포스트휴먼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불일치를 새로운 개체초월적 차원으로 해결하려는 것

 

포스터휴먼화에 대한 사유는 심신 변형을 둘러싼 사이보그 문제로부터 좀더 확장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자연과 인간과 기술의 본래적 관계 맺음을 은폐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치적 이해관계나 자본에 의해 가고 있지 않은지. 어쩌면 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여자들이 추천한 참고 자료 중 

 

조나단 울슨의 작업

Jordan Wolfson: (Female Figure) 2014

 

I’m Here

로봇의 로맨스를 다룬 스파이크 존스의 단편영화

 

나타샤 비타-모어 인터뷰

Natasha Vita-More on Whole Body Prosthetic

트랜스휴머니스트 예술가인 나타샤 비타 모어와의 인터뷰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접근과 학문간 융합

체화된 인지에 대한 이정모 교수의 논문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으로 살만 루시디 읽기:『악마의 시』에 나타난 휴먼/포스트휴먼

공상과학적 테크노 엑스터시, 인간 중심의 포스트휴먼 논쟁에서 벗어나 정체성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이 되는 논문

 

트랜스휴머니즘의 역사 (영문)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 소장이며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를 만든 닉 보스트롬이 쓴 트랜스휴머니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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